나는 연구가 나에게 잘 맞는 것 같아서 박사과정을 시작했다. 새로운 지식을 탐구한다는 느낌 자체가 좋았고, 논문을 써서 국제 학회에 발표하는 것이 멋져보였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연구실이었기 때문에 그 이름이 주는 명예와 네트워크도 대단했다.
하지만 첫 2년은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논문도 나오지 않았고 펀딩 프로젝트 기여도도 낮았다. 이미 석학이었고 외부 활동으로 바빴던 교수는 큰 방향만 잡아줄 뿐 상세한 지시가 없어서, 내 나름대로 논문을 많이 읽고 아이디어도 많았지만 여러 갈래로 나뉘어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많은 시작이 그러하듯 단순한 동기에서 박사과정에 발을 들였는데, 실제로 연구를 하는 과정은 단순하지 않았다. 연구실 선배들은 시간이 지나면 경험이 쌓여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독려해주었지만, 잠깐의 위로가 될 뿐 연구의 진척은 쉽게 보이지 않았다.
경험에서 나오는 노련함 같은 추상적인 개념 말고, 나는 어떻게 일하는 지 그 방법을 배워야 했다. 그래서 성과가 좋은 연구실 선배들이 어떤 식으로 결정을 하고, 실험을 하고, 회의를 하는 지 주의를 기울여 보았다. 그들의 특징적인 행동이나 생각하는 패턴을 적어두고, 나의 현재 연구에 적용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바로 쓸 수 있는 방법도 있었고 한번에 이해되지 않는 방법도 있었다. 연구의 여러 단계에서 생각해보고, 여러 번의 연구 사이클을 거치면서 그 행동 원칙들을 나 나름대로 다듬어갔다.
그렇게 완성한 것이 아래의 성장 원칙(Growth Principles)이다. 연구를 잘하는 방법을 찾으려는 시도에서 출발했지만, 곧 그것이 기술이나 요령이 아니라 태도와 내적 성장을 기반으로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성과란 자신만의 업적을 구체적인 형태로 정리한 것이다. 남들에게 보여줄 수 있고, 오래 남아 이력의 일부가 된다.
논문 📰: 국제 학회, 워크숍, 국내 주요 학회에 발표한 논문
코드 💻: 오픈소스 코드와 그 설명 문서
그 외 자료 📑: 블로그 글, 발표 슬라이드, 위키 문서 등
시작한 연구는 반드시 성과로 끝을 맺는다. 작은 결과라도 괜찮다. 이는 성취감을 주고 자신감을 키우며, 다음 연구를 이어갈 힘이 된다.
“아이디어는 쉽다. 실행이 전부다.” - 존 도어
연구 아이디어는 학회, arXiv, 강연 등지에 이미 널려 있다. 연구를 잘한다는 것은 아이디어를 잘 내는 것이 아니라 실행을 잘하는 것이다.
빠른 시도, 빠른 포기 ⚡
중요 🔑: 코드, 실험 환경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것
수많은 아이디어들을 빠르게 검증하면서 좋은 아이디어를 감별하는 능력도 향상된다.
인생도 연구도 운칠기삼(運七技三). 그렇다고 모두 운에 맡길 것인가? 연구의 물량을 늘리면 성공할 기회가 늘어난다.
플랜 A가 실패할 경우 잘 분석하고 플랜 B로 넘어간다. ▶️
플랜 B가 실패할 경우 잘 분석하고 플랜 C로 넘어간다. ⏩
… (반복) 🔁
중요한 것은 “다음 플랜”을 많이 준비해 두는 것이다. 실망하느라 감정 소모하지 말 것. 다른 사람들도 다 실패하고 있다.
연구의 마지막 단계는 마케팅이다. 실험과 분석이 끝난 뒤, 그 내용을 잘 전달하고 홍보하는 것까지가 연구다.
적당히 하고 포장만 잘하면 🥈 → 그저 그런 학회,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다.
열심히 하고 포장을 잘하면 🥇 → 좋은 학회에 발표하여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다.
열심히 하고 포장을 못하면 🔇 → 아무 것도 아님
그러나 왜곡하고 과장할 경우 연구 커리어가 종료된다.
연구에 자신감이 붙으면 다른 사람의 연구가 하찮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연구 자체를 부정하거나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면 득이 될 게 없다. 연구직 취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 관계다.
“쟤는 도대체 뭐하는 거지?” → “좋은 방향인데요, 혹시 이런 쪽으로도 생각해 보셨나요?” 💡
“저거 안 될 거 같은데?” → “이 방법은 이 상황에서는 의도한대로 잘 안 되지 않을까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건설적인 비판을 하자. 모든 연구는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 - 알렉스 퍼거슨
모든 연구는 혼자 할 수 없다. 다음을 항상 염두에 둔다.
코드 및 실험 환경 공유 🛜
분업 ✋
상호 피드백 🗣️
천재 1명보다 노력하는 범재 3명이 훨씬 생산성이 높다. 기여도 결정은 반드시 공정하고 확실하게 하여 감정이 상하지 않도록 한다.
성장이라 함은 단지 연구 실적을 쌓는 데 그치지 않고, 목표를 지속적으로 달성하며 실적과 능력을 함께 넓혀가는 과정이다. 대학원 생활은 졸업 후 의미 있는 커리어를 이어가기 위한 토대가 되며, 연구와 엔지니어링이 뒤섞인 산업 환경에서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 앉혀놓고 알려주지 않는 이상, 스스로 원칙을 정하고 매일 마음에 새겨 실천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다. 위의 내용을 토대로 각자의 성격이나 상황에 맞게 자신만의 규율을 써보는 것도 좋다. 내가 아마존의 리더십 원칙(Leadership Principles)을 읽고 성장 원칙을 만들었던 것처럼.
이 글의 영어 버전은 여기서 볼 수 있습니다: link